✴본 받아야 할 리더십 & 파트너십✴
알래스카를 여행하다 보면 눈과 귀에 가장 많이 다가오는 단어가 ’수워드(Seward)’가 아닌가 싶습니다.
’수워드’라는 항구도시가 있고, ’수워드 하이웨이’ 라는 고속도로도있었습니다.
마치 한국에서 ’세종’이라는 이름이 여기저기 쓰이는 것과 같았습니다.
잘 알고 계시는바와 같이
알래스카는 지금부터 약 155년전인 1867년 미국 정부가 제정 러시아로 부터 720만 달러를 주고 사들인 땅입니다.
요새 우리 돈으로 단순히 환산하면 86억원 정도이니 서울 강남의 큰 평수 아파트 2채 정도 값으로 너끈히 매입할 수 있는 부동산입니다.
알래스카 매입을 주도한 인물이 윌리엄 수워드(William Seward)라는 당시 국무장관입니다.
그런데 아직 광대한 서부개발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여서 그런 거금을 주고 알래스카를
🍎사겠다는 수워드 장관의 결심에미국의 의회(議會)와 언론(言論)이 매우 부정적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의회와 언론은 알래스카를 ’수워드의 얼음박스’ 라고 조롱(嘲弄)을 했고, 그 거래를 ‘’수워드의 우행(愚行)’’ 이라고 비난(非難)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미국의 먼 미래를 내다보며 알래스카의 영토적 가치를 평가했던 수워드 장관은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을 뚫고 이 땅을 매입(買入)하는 데 진력(盡力)했다고 합니다.
당시 수워드 장관은 핵무기나 핵잠수함 시대를 전혀 예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알래스카의 매입 덕분에 한 세기(世紀)가 지난 후 지금, 미국은 그 땅 면적을 뛰어 넘어 사실상 거대한 태평양을 미국의 바다처럼 사용하며 ’팍스아메리카’의 세계전략을 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워드는 앤드루 존슨 대통령의
국무장관으로서 알래스카 매입을 추진했지만
그를 처음 국무장관에 임명한 사람은
링컨 대통령이었습니다.
*수워드와 링컨은 같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두 사람은 치열하게 싸웠던 경쟁자들이였습니다.
수워드는 사실 링컨 보다 훨씬 화려한
경력을 가진 정치인이였다고 합니다.
스워드는 당시 약관(弱冠)에
뉴욕 주지사와 연방상원의원에도
각각 두 번이나 당선된 화려한 경력과 젊은 변호사 시절부터 급진적일 만큼 흑인 인권보호에 적극적이었던 인물로 정평(定評)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어느 모로 보나
지명도에서 앞서 있던 수워드에게
중서부 변방(邊方) 출신의 링컨이 도전(挑戰)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예상(豫想)을 뒤엎고
수워드는 링컨에게 역전패했습니다.
굳이 지금의 우리나라에 비유하자면
화려한 이력의 서울시장이 지방출신 국회의원에게 당한 꼴이 된 당시의 수워드 모습이였지 않나 보여집니다.
당시의 정치풍토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패배한 수워드는 미국전역을 돌며 경쟁 상대였던 대통령 후보 링컨의 지원유세에 열성적으로 나섰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에 당선 된 링컨은 그에게 국무장관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수워드는 링컨 정부의 남북전쟁 수행에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합니다.
대통령 감으로 손색이 없는 두 정치인이 콤비를 이루어 혼란기의 내각을 이끌어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수워드와 링컨의 관계가 존경스럽고 엄청 부럽게 느껴지는 것은
만만치 않는 경력의 경쟁자를
국무장관으로 발탁할 수 있었던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의 배포(排布)와 도량(度量), 그 밑에서 훌륭한 국무장관으로써 자기 조국에 충성하고 봉사했던 수워드의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이와같은 정치 지도자들의 정신자세가 허다한 실수와 아직도 부족한 미국을 오늘날 위대하게도 세를 지배하고 오늘의 미국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저는 확신(確信)하고 있습니다
링컨이 미국인에게 위대한 것은
두 동간 난 국론(國論)을 통일했기 때문입니다.
수워드가 대단한 것은 이 혼란의 시기에 미국의 장래를 내다보며 국가의 외연(外緣)을 넓혔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역사에서 가정(假定)은 쓸데없는 일이지만
링컨과 수워드가 없었다면 오늘날 미국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야수(野獸)의 싸움을 방불케 하는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링컨 시대의 정치 리더십과 정치 파트너십을 다시 한번 떠 올려보게 합니다.
우리도 머지 않는 날에 이런 모습을 보게 될 정치풍토를
가슴에 그려 보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