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행복
< 빛나는 성벽 > – 텔마 톰슨 –
‘텔마 톰슨’ 이라는 여인은 2차 세계대전 중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며, 한 육군 장교와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을 따라 캘리포니아에 있는 ‘모제이브 사막’ 근처의 육군 훈련소에 배속되어 왔습니다.
남편 가까이에 있고 자 이사를 했지만, 사막의 모래바람으로 가득 찬 그 곳에서의 삶은 참으로 외롭고 고독하기만 했습니다.
못 마땅한 점은 이루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남편이 훈련 차 나가고 오두막집에 혼자 남게 되면, 50도가 넘는 살인적인 무더위에 이야기 상대라고는 고작 멕시코인과 인디언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어로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항상 모래 바람이 불어 음식물은 물론이고, 호흡하는 공기에도 모래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녀는 절로 신세 한탄이 나왔고, 슬프고 외롭고 억울한 생각이 들어 친정 부모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니 당장이라도 짐을꾸려 집으로 돌아가겠으며, 이곳에 더 눌러 사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는 편이 낫겠다는 내용으로 자신의 형편을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당장 오라거나 자신을 위로해 줄 거라 기대했던 아버지의 답장은 ‘단 두 얘기’ 뿐 이었습니다.
“두 사나이가 감옥에서 조그만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헤아리며 자신의 미래를 꿈꾸며 살았고, 다른 한 사람은 감옥에 굴러다니는 먼지와 바퀴벌레를 세며 불평과 원망으로 살았다.”
너무 간단한 편지 내용에 처음엔 너무나 실망했지만, 이 두 얘기가 그녀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문구를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읽던 그녀는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그때부터 현재의 상태에서 무엇이든 좋은 점을 찾아내려고 애썼습니다.
자신에게 밤하늘의 별이 무엇일까?를 생각했고, 주변을 살피던 중 원주민들과도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보여준 반응은 그녀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녀가 그들의 편물이라든가 도자기에 대해 흥미를 보이면, 그들은 여행자에게는 팔지도 않던 소중한 것들을 이것저것 마구 선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선인장 난초 여호수아 나무 등의 기묘한 모양을 연구했고, 사막의 식물들을 조사했으며, 사막의 낙조를 바라보기도 하고, 1백만 년 전 사막이 바다의 밑바닥이었을 무렵에 존재했을 법한 조개껍질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변화 시켰을까요?
‘모제이브 사막’은 변함이 없고 인디언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변한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었습니다.
그녀의 ‘마음가짐’ 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녀는 ‘비참한 경험’을 생애에서 가장 ‘즐거운 모험’으로 바꾸었고, 새롭게 ‘발견한 세계’에 자극 받고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그것을 소재로 해서, “빛나는 성벽”이라는 소설을 썼습니다.
‘출판 싸인회’ 에서 그녀는 이렇게 인사했습니다.
사막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너는 불행하다!’
‘너는 외톨이다!’
‘너는 희망이 없다!’ 라고 말하는
‘마귀의 소리’도 들렸고
“너는 행복한사람이다!
이곳으로 너를 인도한 이는 바로 나 하느님이다.
이곳에서 너의 새 꿈을 꾸려무나.” 라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저는 ‘마귀의 소리’ 에 귀를 막고 ‘하느님의 소리’ 를 들으면서 오늘의 이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
이와 같이 ‘행복’은 우리의 마음 먹기에 달렸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조건’ 때문에 행복하고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마음 가짐’이 행복과 불행을 결정합니다.
마음은 몸을 지배하고 다스립니다.
덥다고 짜증을 부리면 몸도 마음도 상하게 됩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신경질을 부리면 나머지 가족들까지 신경질을 부리게 되며 ‘부정적 바이러스’는 모든 가족에게 번져서 기분을 망치게 됩니다.
‘자살’이라는 글자를 반대로 하면 ‘살자’ 가 되며, 영어의 ‘스트레스(stressed)’를 반대로 하면, ‘디저트(desserts)’란 말이 됩니다.
나폴레옹은 유럽을 제패한 황제였지만 “내 생애 행복한 날은 6일 밖에 없었다.”고 고백했고,
헬렌 켈러는 “내 생애 행복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는 고백을 남겼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행복”을 누리고 살 권리가 있습니다 !
우리는 절대로 “행복”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꾸 묻습니다.
행복 하냐고
낯선 모습으로 낯선 곳에서 살고 있는 제가 자꾸 걱정이 되나 봅니다.
저울에 “행복” 을 달면 불행과 행복이 반반이면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불행 49%” “행복 51%” 이면 ‘저울’이 “행복”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행복의 조건” 엔 이처럼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우리 삶에서 단 “1%”만 더 가지면 행복한 겁니다.
어느 상품명처럼 2%가 부족하면, 그건 엄청난 기울기입니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1%”가 빠져나가
‘불행’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더 많은 수치가 기울기 전에, 약간의 좋은 것으로 얼른 다시 채워 넣어 “행복의 무게” 를 무겁게 해 놓곤 합니다.
약간의 좋은 것 ‘1%”
우리 삶에서 아무 것도 아닌 아주 ‘소소한 것’ 일 수도 있습니다.
기도할 때의 평화로움
따뜻한 아랫목
친구의 편지
좋았던 추억
감미로운 음악
파란하늘 태양 달 별 나무와 꽃들
그리고, 잔잔한 그리움까지 ….
팽팽한 무게 싸움에서는 아주 ‘미미한’ 무게라도 한쪽으로 기울기 마련입니다.
단, “1%”가 우리를 “행복”하게, 또 ‘불행’하게, 합니다 !
나는 오늘 그 “1%”를 “행복의 저울” 쪽에 올려 놓았습니다.
그래서, 행복하냐? 라는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네, 행복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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