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민족의 홀수문화 **
홀수는 우리 민족 정신문화의 깊은 뿌리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까마득한 시절부터 조선의 혼속에 묻혀 내려온 민족문화다.
자연스런 일상생활의 넉넉한 관습에서 얻어진 지혜의 소산으로 홀수는 딱 맞아 떨어지는 짝수에 비해서 넉넉하고 여유롭다.
그중에서도 특히 3을 선호하고 있지만 1,3,5,7,9 모두가 우리 생활 속 깊이 맥을 내리고 있다.
우선 국경일이라든가 명절이 모두 홀수 날이다. 뿐만 아니라 때 맞춰서 돌아오는 절기가 거의 홀수 날에 들어있다.
설날과 추석이 그렇고 정월 대보름 삼짇날 단오 칠석 백중이 그렇다. 9월 9일은 구일이라 하여 남자들은 시를 짓고 여자들은 국화전을 부쳤다.
천고마비의 살찌는 계절을 즐기던 조상님들의 흐뭇한 얼굴이 떠오른다.
생활 곳곳에 뿌리 내린 3의 의미는 더욱 다양하다.
사람이 죽으면 3일장 아니면 5일장을 치르는 것이 보통이지 4일장이나 6일장은 없다.
역시 삼우제(三虞祭)가 있고 49제라는 추모의 날이 있다.
망자 앞에서는 홀수 날을 택하여 최대의 예우를 지키는 것이 뿌리 깊은 전통이다.
심지어 제물을 올려도 홀수로 올리지 짝수로는 차리지 않는다.
돌탑을 쌓아도 3, 5, 7, 9 홀수 층으로 올렸을 때에 시각적으로 안정감이 들면서 보는 마음을 편케 한다.
애기를 낳고 금줄을 쳐도 세이레(三七日)동안 출입을 삼갔다. 신성한 생명을 지키면서 축복하자는 삼신할미의 준엄한 고지(告知)다.
봉투에 돈을 넣어도 우리 서민들은 두 자리 수가 아닌 이상 3만 원 아니면 5만 원을 넣었지 4만 원이라든가 6만 원짜리 기부 촌지는 보기 어렵다.
상납금을 강요하는 교장이 교감에게 넌지시 말씀하셨다고 한다.
‘짝수로 인사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 여지껏 그런 것도 모르느냐’ 호통을 치는 바람에 백만 원을 더 얹어서 바쳤다고 한다. 쥑일 놈 같으니라구!
이렇듯 3이라는 숫자가 우리들 생활 중심에서 축을 이루고 있다.
춥고 긴긴 겨울을 삼동(三冬)이라 했고 무더운 여름을 건너가려면 삼복(三伏)을 견디어야 한다.
무리를 일컬어 삼삼오오(三三五五)라 했고 색깔을 이야기할 때도 삼원색이 근원이다.
상고(上古)시대에 우리나라 땅을 마련해 준 삼신(三神)이 있다 하여 생명 신으로 섬긴다.
삼재(三災)가있는가 하면 또 삼재(三才)가 있다.
현대에는 시위문화에서 삼보일배(三步一拜)라는 것이 새로 생겼다. 간절하고 지극한 정성의 극치다.
가까운 이웃을 일컬어 삼이웃이라는 좋은 표현이 있는가 하면 잘 하면 술이 석 잔 못 하면 뺨이 석 대다.
힘겨루기 판을 벌여도 5판 3승제를 하며 만세를 불러도 삼창(三唱)까지 해야 속이 후련했다.
짝수는 죽은 자의 숫자란 말이 있고 홀수는 산 사람의 숫자란 말도 있다.
그래서 제사상에는 과일을 홀수로 올리고 절을 두 번 하지만 산 사람에겐 절을 한 번만 하면 된다.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목적한 것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은 생활 속 곳곳에 숨어있다.
그만큼 3이라는 숫자는 우리 생활의 디딤돌이요 구름판으로 안정된 균형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