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이무첨(貧而無諂) – 가난해도 굽실대지 않는다.
[가난할 빈(貝/4) 말이을 이(而/0) 없을 무(灬/8) 아첨할 첨(言/8)]
가난을 좋아하거나 일부러 원하는 사람은 없다. 가난에 대해서 부끄럽지 않고 아무리 대범한 척 해도 불편한 생활일 수밖에 없다. 가난을 즐기지는 않더라도 일부러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하지 않고 초연하게 보내 성어로 남은 예화가 제법 된다. 安貧樂道(안빈낙도)의 대표적인 몇 사람을 들어보자.
대나무 그릇의 밥에 표주박에 든 물만으로 簞食瓢飮(단사표음)의 생활을 하고도 학문을 즐긴 顔回(안회)가 먼저 꼽힌다. 한 달에 식사는 아홉 끼가 고작인 三旬九食(삼순구식)의 陶淵明(도연명)은 歸去來辭(귀거래사)를 남겼고, 냉이 국과 굳은 죽을 잘라 먹었다는 斷薺劃粥(단제획죽, 薺는 냉이 제)의
范仲淹(범중엄)은 岳陽樓記(악양루기)가 유명하다.
이같이 도통한 성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은 가난에 대해서 태연하기 어렵다. 더구나 한 끼의 밥을 해결하려는 사람은 죽기보다 싫다 해도 허리를 굽실거리지 않을 수가 없다. 孔子(공자)가 이와 관해서 제자와 문답을 주고받았다.
十哲(십철) 중의 한 사람이고 큰 재산을 모은 理財家(이재가)이기도 했던 子貢(자공)이 여쭈었다. ‘가난하면서도 남에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교만하지 않으면 어떻겠습니까(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빈이무첨 부이무교 하여)?’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는데 스승은 더 이상을
기대한다. ‘論語(논어)’ 學而(학이)편에 나오는 뒷부분을 보자.
공자는 괜찮다면서 덧붙인다. ‘가난하면서도 즐겁게 살고, 부유해도 도를 즐기는 것만 못하다(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미약빈이락 부이호례자야).’ 가난하면서 즐겁게 살기는 어려우니 貧而樂(빈이락) 뒤에 道(도)가 빠졌다고 보고 도를 즐긴다고 해석한다.
빈자이거나 부자거나 간에 아첨과 교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스스로 지키는 바를 알아야 즐거울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禮記(예기)’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가난하면서도 즐거움을 좋아하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며, 가족이 많으면서 편안해 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몇
명이나 되겠는가(貧而好樂 富而好禮 衆而以寧者 天下其幾矣/ 빈이호락 부이호례 중이이녕자 천하기기의)?’ 백성들의 잘못을 막는다는 坊記(방기)편이다.
가난한 자나 부자라도 아첨과 교만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만큼 상대를 대하는 것은 더 어렵다. 宋(송)나라의 蘇東坡(소동파)가 말한 것이 明心寶鑑(명심보감)에 인용된다. ‘상대가 부자라고 친한 척 하지 않으며, 가난한 자라고 멀리 하지 않는 것이 인간 세상에서 대장부(富不親兮貧不疎
此是人間大丈夫/ 부부친혜빈부소 차시인간대장부).’ 좀 더 여유 있는 쪽에서 마음을 넓게 베풀어야 세상이 훈훈할 텐데 가진 자의 교만에다 욕심은 잇따른다. 높은 자리에서 갑질이 그렇고 약자 상대로 한 폭리가 그렇다.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