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심증과 심근경색증
화창한 가을 오후 오진수 씨(남, 53세, 가명)는 자녀들과 자전거로 한강변을 달리고 있었다. 목표는 양평 두물머리. 서울아산병원 옆을 지나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왜 이러지?’ 하며 자전거에서 내리는 순간 오 씨는 정신을 잃었다.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 자녀들의 모습이 오 씨가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오 씨는 주변 사람들의 심폐소생술과 5분 만에 도착한 119 구급대의 제세동치료로 소생한 후 우리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응급 관상동맥조영술 결과 좌전하행 관상동맥의 급성 폐쇄로 스텐트 삽입 시술 후 무사히 회복했다. 지금은 회사도 다니고 자전거도 타면서 행복하게 제2의 인생을 즐기고 있다.
가슴을 부여잡으며 쓰러진 후 다시 일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수천 년 전부터 있었다. 히포크라테스는 팔로 뻗치는 호흡곤란을 동반한 가슴 통증을 협심(angina)이라 명명했으며 ‘가슴 통증이 반복되는 노인은 급사에 이른다’고 기술한 바 있지만 그 원인은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19세기 병리학자들이 급사한 사람들의 관상동맥이 혈전으로 막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세 개의 혈관이 심장을 촘촘히 둘러싸고 피를 공급하며 그 모양이 마치 왕관 같다고 하여 관상동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영어로는 Coronary, 왕관을 뜻하는 라틴어 Corona에서 온 말로 지금 유행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어원이 같다. 그 혈관 안에 죽과 같은 기름 찌꺼기가 쌓여서 혈관이 좁아지는 죽상경화증이 협심증 혹은 심근경색증의 원인이다. 심장이 온몸에 혈액을 공급하는 펌프라면 관상동맥은 펌프에 연료를 공급하는 파이프이다. 혈관이 좁아져 연료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심장은 신호를 보낸다. 통증으로 오는 신호가 바로 협심증이다. 혈관이 빠른 속도로 좁아지거나 죽상경화반이 터지면서 생기는 혈전으로 갑자기 막혀 펌프의 기능이 망가지는 것이 심근경색증이다.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은 근본적으로 같은 병이다. 관상동맥 협착의 진행이 만성인지 급성인지에 따라 협심증, 심근경색증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고 협심증 환자에서 심근경색이 발생하기도 한다. 넓게 보면 뇌혈관질환, 말초혈관질환도 모두 비슷한 병이다. 죽상경화증으로 혈관이 좁아지고 해당 장기에 혈액 부족 증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관련된 위험 인자로는 고령, 때이른 심혈관질환의 가족력, 비만, 흡연,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이 있다. 예방과 치료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금연이다. 금연 후 1년이 지나면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절반으로 감소하며 15년이 지나면 전혀 담배를 피지 않은 사람과 위험도가 비슷해지니 하루라도 빨리, 오늘 당장 끊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밖에도 단순 당과 포화지방을 줄이는 건강한 식사와 운동, 체중 감량, 동반질환 관리를 통해 심혈관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가운데 혹은 좌측 가슴이 운동 시에 아프고 휴식 시에 나아지는 통증이 전형적인 협심증의 증상이다. 통증이 점점 심해지거나 가만히 있어도 아플 경우 불안정형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증이 의심되며, 이런 경우 응급실로 내원하여야 한다. 병원에 내원하면 병력 청취, 신체 검진과 함께 검사를 통해 심혈관질환을 진단한다. 심전도, 운동부하검사, 심초음파, 심근스펙트, 관상동맥 CT 등의 다양한 검사법이 있으며 필요 시 관상동맥을 직접 들여다보는 관상동맥 조영술을 시행하게 된다.
심혈관질환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약물 치료는 혈관의 기름때를 줄여 주는 항고지혈증약인 스타틴과 혈전이 생기지 않게 해주는 아스피린 등의 항혈전제다. 이에 더하여 통증을 조절하기 위한 베타 차단제, 칼슘채널 차단제, 질산염 제제 등을 투여하게 되며, 약으로 증상이 조절되지 않거나 급성 악화로 생명이 위험할 때는 혈관을 열어주는 재관류 치료를 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간단한 협착은 풍선과 스텐트를 이용하여 혈관을 넓혀주는 중재시술로, 복잡한 병변은 협착부위 후방에 이식 혈관을 붙여주는 관상동맥 우회수술로 치료한다. 최근 우리 병원에서는 손목 혈관을 이용하여 시술 후 오후에 퇴원하는 당일 시술도 시행하고 있으며 수술 후에도 다수의 환자들이 1주일 정도면 퇴원하고 있다.
슬프게도 심혈관질환에는 완치가 없다. 죽상경화증은 전신 혈관에 발생하는 만성 질환으로 평생 관리하는 병이다. 시술이나 수술을 받았다고 관리를 소홀히 했다가 협착이 재발하거나 스텐트 혈전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치료 후에도 평생 금연, 운동, 복약 세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영양 상태가 좋아지면서 심혈관질환 환자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심혈관질환은 전세계 사망의 첫 번째 원인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암에 이은 두 번째 사망 원인이다. 심혈관질환은 일찍 발견하고 큰 일을 겪기 전에 미리 관리하는 것이 제일이다. 위에 언급한 위험인자들을 미리 관리하고 흉통이 생길 경우 참지 말고 병원에 방문하여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안전하다. 오른쪽 체크리스트에 해당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심장내과를 방문할 것을 권한다.
심장내과 강도윤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