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인무기■ (至人無己)~
‘지극한 사람은 나라는 것이 없다’
히말라야 산자락에 있는 부탄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
이 나라는 전체인구가 80여만 명이고, 1인당 국민소득이 3,000 달러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작은 나라가 요즘 각국의 ‘국민행복도’ 조사 에서 단골로 상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 연유를 쫒아가면 이 나라에 아주 뛰어난 국왕이 있습니다. 바로 왕추크 국왕입니다. 이 국왕은 국정의 목표를 국내총생산
(GDP)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국민총행복(GNH)지수를 높이는 것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헌법에 ‘숲은 최소한 국토의 60%로 유지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예산 이지만 그 예산을 자연과 교육과 의료에 쏟아 부었습니다.
고등학교 까지 무상교육이고 의료 또한 무상입니다. 이 국왕은 으리으리 한 궁전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숲속에 있는 작은 나무집
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하들도 검소하게 사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본 국민들은 남과 비교해서 내가 잘 사니, 내가 못 사니 초조해 할 일도 없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마냥 행복하기만 합니다.
그 보다 놀라운 것은 지그메 싱계 왕추크 국왕과 그 뒤를 이은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국왕은 국민 들을 행복하게 하는 행복 정치를 펼치면서…
혹여 후대를 이을 왕 중에 폭군이나 독재자가 나타날 것을 우려해서 자신들이 왕으로서 가지는 모든 권력을 포기하고, 전제군주제에서 입헌 군주제로 바꾸기로 결심
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의견을 알렸고, 의회에도 통보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직접 자신들의 권력을 포기하고 국민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민주주의로 체제를 변경하겠다고 했는데도, 오히려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국왕이 정치를 너무 잘하였기에 국민들이 민주주의
를 반대하고 현재의 전제군주제를 고수하려고 할 정도로 부탄은 정말로 평화로운 국가였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국민들의 반대와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그메 싱계 왕추크 국왕은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민주화를 설득했고,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국왕도 국민들에게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지 시키면서 의회의 반대를 일축 했습니다.
그리하여 왕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2008년 7월 18일 세계에 유례없는 소위 하향식 민주주의가 실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민주주의로 체제가 바뀌면 왕권은 자연스럽게 약해
지는 것이 통례인데, 부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헌법을 통해 왕권약화를 위한 법률이 제정 되었습니다.
‘부탄을 다스리는 왕추크 왕조의 국왕은 다음의 사항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 민주주의를 도입하나 국왕은 그대로 유지하는 입헌군주제로 전환 한다.
왕의 혈통은 이어진다. 그러나 왕의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해 왕은 65세가 되면 반드시 은퇴해야 한다. 새로운 왕이 즉위하기 전에는 부탄의 모든 국민에게 뜻을 물어 과반수면 즉위를 할 수 있다.
또한 왕이 폭정을 일삼을 때에는 의회가 왕의 폐위 투표를 개최할 수있으며, 국민의 3분의 2가 왕의 폐위에 찬성하면 왕은 즉시 폐위
된다.’
이런 규정들은 왕권을 약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되지만 애초에 국왕이 앞장서서 왕권 약화를 주도한 것이기 에 이 법률은 별다른 문제없이 통과 되었습니다.
이러한 국왕의 과감한 개혁, 검소한 생활, 국토 구석구석
까지 방문하여 국민들과 소통하는 행보, 평민과의 결혼 등에 수많은 국민
들이 감동하여 왕가의 인기와 권위가 가히 절대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국왕의 결혼식이 열렸을 때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전국에서 축제를 열고 축하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18년 동안 능력, 수완, 헌신 및 성실함으로 8천만 독일인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녀가 18년 동안을 통치하는 동안 위반과 비리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어떤 친척도 지도부에 임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예전과 다름없이 겸손 했고 자신보다 앞섰던 정치인들 과도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재임 18년
동안 한결같이 그녀는 새로운 패션으로 옷을 갈아입지 않았습니다.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는 메르켈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항상 같은 옷만 입고 있는 것을 주목
했는데, 다른 옷은 없는지요?”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모델이 아니라 공무원
입니다.”
또 다른 기자회견
에서도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가사도
우미가 있습니까?”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저는 그런 도우미는 없고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남편과 저는 매일 이 일들을 우리끼리 합니다.”
그러자 다른 기자가 물었습니다. “그럼 누가 옷을 세탁
합니까? 당신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남편이 합니까?”
이에 메르켈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옷을 손보고, 남편이 세탁기를 돌립니다. 대부분 이 일은 무료전기가 있는 밤에 합니다.” 지금 메르켈은 다른 시민들처럼 평범한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독일총리로 선출되기 전에도 이 아파트에 살았고, 그 후에도 그녀는 여기를 떠나지 않았으며, 별장, 하인, 수영장, 정원도 없습니다.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 하는 정치인이 누군지 물어보면 대답이 한결 같습니다. 어떤 국회의원은 그에게 사인 받은 책을 보여주며 눈물까지 흘립니다.
1946년부터 23년간 총리를지낸 타게 엘란데르
(1901~1985)는 재임 중 11번의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고, 마지막
선거에서는 스웨덴 선거 사상 처음으로 과반을 넘는 득표율로 재 집권한 후 후계자에게 자리를 넘겨 주고 떠납니다.
정말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깁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20여 년의 장기
집권이 가능 하도록 스웨덴 국민들이 신뢰를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는 총리시절에도 관저 대신 임대 주택에서 월세를 내고 살았습니다.
출퇴근도 관용차 대신 어머니가 직접운전하는 차를 이용했습니다
임대주택은 자신의 재임시절 서민을 위해 지은 아파트
입니다. 그는 특권을 버리고 국민의 삶속으로 들어와 친구 처럼, 다정한 이웃처 럼 지냈습니다.
1968년 국민들은 다시 한 번 깜짝 놀랍니다.
타게 엘란데르가 총리를 그만둔 후 거처할 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당원들이 급히 돈을 모아 집을 마련
합니다. 스톡홀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봄메쉬빅, 한적한 시골마을
입니다.
부부는 마을 호숫가 옆 작은 주택에서 16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총리시절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지자보다 반대편에 섰던 사람이 더 많이 찾았다고 합니다.
타게 엘란데르는 떠났지만 23년동안 국민을 위한 그의 헌신은 스웨덴 정치의 교과서로 자리 잡았고 세계 최고의 행복한 나라로 만든 원동력이 됐습니다.
그는 일생 동안 정직, 겸손, 헌신, 대화와 타협, 검소하고 특권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부탄의 왕추크 국왕은 전제군주
였고,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중도우파 ,스웨덴의 타게엘란테르
총리는 급진좌파 였습니다.
이들은 정치체제나 이념, 계파를 초월하여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추구함 으로써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에게는 냉혹할 정도로 엄격하고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 하면서 국민을 진심으로 섬기는 살신성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장자 소요유편에 지인무기
(至人無己) 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극한 사람은 나라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말은 ‘나를 버리고
나면 나 아닌 것이 없다’는 말로 “나와 나 아닌 것이 하나된 삶”을 영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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