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네 가지,변비공정(變秘空正)

실즉허(實卽虛), 허즉실(虛卽實)이라는 말이 있다. 될 것 같은데 안되고, 안 될 것 같은데 되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없는 듯하면서도 있는 것이 수없이 많다. 나만 고민이 많은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고민이 많은 사람이 있고, 나만 잘난 줄 알았는데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이 많은 것이 세상이다. 믿고 돈을 빌려주었더니 먹튀해 버린 친구가 야속하여 평생웬수가 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세상에 믿을 놈이 없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세상에 없는 것 ‘네 가지’를 들라면 ‘많은 월급’, ‘좋은 상사’, ‘예쁜 마누라’ ‘믿을만한 정치인’이라는 웃픈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있고 없고의 시시비비를 떠나 진짜로 없는 게 ‘네 가지’가 있으니 바로 ‘변비공정(變秘空正)’이다.

첫째,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 마치 죽은 것 같던 마른 가지에서 싹이 돋고, 마냥 푸름을 과시하던 나뭇잎이 어느새 붉게 물들어 하나 둘 떨어진다. “우주에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이라(宇宙中唯一不變的是變化)”고 한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은 불변의 진리처럼 보인다. 그래서 흐르는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씻을 수 없다고 했다.

‘주역’에 담겨 있는 철학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 것이 그 유명한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간다(窮則變, 變則通, 通則久)”이다.

둘째, 비밀이 없다. 한두 사람을 오래 속일 수 있으나 여러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없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도 있고,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말도 있다.

멀리 찾을 것도 없이 잊을 만하면 터지는 유명인의 여러 스캔들이나 눈살 찌푸리는 부정부패와 비리가 드러나는 것만 봐도 세상에 비밀은 없는 것 같다.

나에게만 알려줬다던 비밀이 어느새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실이 되기도 한다. 목숨을 걸고 비밀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고 받고 또 받았으나 자신의 입을 떠난 순간부터 자신만 모르고 모두가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난처했던 경험은 누구나 겪어 보았을 것이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링컨은 “거짓은 잠깐 통할 수는 있으나 영원히 통할 수는 없다. 속이고 감추려고 해도 진실은 반드시 드러난다”며 진실의 힘을 강조했다.

셋째, 공짜가 없다. ‘변화’나 ‘비밀’보다 더 ‘꼭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공짜’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적은 노력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공짜의식은 거의 본능에 가깝다. 수많은 불로소득이나 사기 사건이나 보이스 피싱이 일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짜심리 하나만 잘 다스려도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옛날 어떤 왕이 현자들에게 세상의 최고지혜를 모아서 바치라 했다. 12권의 책을 6권으로 줄이고 또 줄여 단 한 권의 책으로 줄이고, 한 권의 책을 한 줄로 줄여서 바쳤다. 내용은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한 문장이었는데 이를 본 왕은 매우 만족해하면서 “바로 이것이다. 이거야말로 고금의 최고 지혜”라고 극찬했다.

넷째, 정답이 없다. 사는 이유 또는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사는 게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 큰돈을 벌고, 명예를 높이고, 권력을 거머쥐면 정답대로 산 인생인가? 먹고 사는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매사에 스스로 만족하면 오답은 피한 것인가? 세상을 사는 정답이 있는 교과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정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당연히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가지고 지키는 게 정답인 줄 알고 살아간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거나 가진 것을 잃으면 잘못 사는 게 아닌가 싶어 힘들어 하기도 한다. 만약 인생의 정답을 찾는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인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있다면 모범 답이 있을 뿐이다. 그 시대의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답은 변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 내 삶의 모범 답안은 내가 찾고 내가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