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빛동전 한닢과 어머니가 남긴 수표 두장

함경도 회령에서 결혼하고 서울 변두리로 온 어머니의 일생은 독한 삶이었다.

적은 수익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 같았다. 평생 옷 한 벌 제대로 해 입는 걸 보지 못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 학교로 오는

엄마의 옷은장속에 오래 묵었던

옛날옷의접힌주름이 그대로 보였다.

어머니는옷이 없어서 학부형회의에 오기가 꺼려진다고 했다.

어머니는 먹는 것에도 인색했다. 생선이나 과일, 달걀이 어머니의 입 속에 들어가는 걸 보지 못했다. 고기도 먹지않았다. 찬밥과 오래된김치 조각이 어머니의 식단이었다.

수은주가 영하 10 도 아래로 내려가는 일월의 칼바람치는날이다. 연탄을 때는 작은 무쇠 난로의 공기구멍은 항상 닫혀 있었다. 내가 공기구멍을 조금 열어놓으면 어머니는 다시와서 그걸 닫아버렸다.

연탄 한 장으로 하루를 버텨야한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한겨울에도 불기가 없는 방에서 잠을자기도 했다.

방안의 구석에 놓아두었던 그릇의 물이 얼음덩어리로 변해 있기도 했다.

초등학교 사학년 시절 나는 어머니와 처음으로 부딪혔다.

거리가 얼어붙은

겨울어느날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찬바람이 이는 도로가에서 전차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천천히 뛰는정도로느릿느릿 가는 전차는 삼십 분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얇은 신발 속의 발가락이 냉기로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버스를

타고 가자고 졸랐다. 어머니는 나를 보고 정신빠진 놈이라고 욕을했다.

당시 버스비는 오원이고 전차는

그 반값인이원오십 전이었다.

아침마다 학교를 갈 때 어머니는

오원짜리 은빛동전 하나를 내게 주었다.

그 돈으로 전차표를 사서 학교를 갔다오라는 것이었다.

추우니까 자주 정류장으로 오는 버스를 타자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정신이 썩은 놈이라고 욕을 했다.

그 추운 자리에서

벌로 한 시간을 더 서 있으라고 했다.

전차가 와도 어머니는 타지않았다.

칼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나는 한 시간 동안 서 있는 벌을 받았다. 어렸던 나는 도무지 그 벌이 납득 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아이도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다녔다. 나는 그 버스조차 탈 자격이 없다는 사실에 반항기가 일었다.

어머니한테 벌을 받은 다음 날부터 나는 버스도 전차도 타지 않았다. 신설동에서 광화문까지.초등학교 사학년 아이의 걸음으로 걸어갔다가.또 걸어왔다.

그렇게 하면 은빛 나는 동전 하나가 생겼다.

나는 마당한구석에 조그만 깡통을 묻어놓고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깡통에 은빛 동전하나씩을 넣었다.

먼 길을 걸어갔다 오면 동전 한 닢을

버는 셈이었다. 그렇게 일년쯤지났다.

어느 날 어머니에게 동전이 가득든 깡통이 발견됐다.

어머니는 그걸 내가 도둑질한 것으로 확신하고 얼굴이 분노로 시퍼렇게 되어있었다.

나는 사실대로 어머니한테 말하고 돈이 좋으면

그돈 다 어머니가 가지라고 했다. 어머니는 외아들인 너를 교육시키려고 했던건데 라고 혼잣말같이 말하면서 침묵했다.

내가 변호사를 개업하고 나서 부터는 매달 얼마씩의 용돈을 어머니에게 드리기 시작했다.

그 돈으로 친구나 이웃에게 밥도사고 편안히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평생 철저했던 절약하는 습관은 버리기 힘든것같았다.

어머니 삶의형태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달라진 점이 엿보였다. 동네에 가난한사람이있으면 쌀집에 부탁해서 쌀가마를 보내기도 하는 걸 알았다.

성당에서 어떤행사가 있으면손이크게 헌금을 한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2016년 새해가 밝아왔을 때였다.

어머니는 나의세배를 받으면서 말했다.

“내가 이제 아흔살이다. 만주에서 전쟁을 겪었고 대동아 전쟁을 겼었고 6·25 때도 남아서오래도 살았다. 산다는게 이제 지겹다.”

어머니는 이제스무살 때 북에서 헤어진 돌아가신 부모곁으로 가고싶으신가 보다 하는생각이 들었다.

그 두달 후였다. 어머니가 은행에서 찾은 수표 두 장을 내게주면서 말했다. “네가 나한테 준 용돈을 거의 쓰지 않고 모아뒀다. 오억원을 채우려고 했는데 모자란다. 아무래도 그렇게못할 것 같다.”

어머니는 내게 받은 용돈을 쓰지않고 돌려주었다. 어린시절 깡통속의

동전들을 어머니께 반납했던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그 다음달 어머니는 저세상으로 가셨다. 

요즈음 내가 깨달은게 있다. 적은수익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먼 길을 간다. 그러면서도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한 발자국도 땅에서 떼지않으려고한다.

기억 저쪽에서 초등학생인 내가

은빛 동전 한 닢을 위해 먼지가날리는

우중충한거리를 걷고있는 모습이보인다.

노인이 된 이제는 진리를 위해 성경의한 페이지를 넘긴다.

글 : 엄상익(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