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C K이 띄우는 편지/격세지감(隔世之感)

그옛날 어린시절 이맘때면 농촌에서 시오리길 떨어진 두메산골 우리 동네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추수하느라 볏짐을 지게에 한 짐지고 줄지어 귀가하는 골목길의 풍경이 장관(壯觀)을 이루었습니다.

초가집 굴뚝에서 저녁연기 모락모락 날때 쯤이면 탈곡기 소리가 요란하게 온동네를 울려퍼졌는데 이제는 적막한 두메산골에 가끔씩 들려오는 것은 농기계 소리 뿐입니다.

기계 영농화로 조건이 좋은 농토만 농기계를 보유한 동네 한 두명과 외지인들이 경작하고 그외 전답(田畓)은 어느새 밤이면 밤마다 멧돼지들의 신방을 차린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60~70년대 저희 동네만 하더라도 110여 가구에 500~600명 주민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급속한 경제 성장과 산업화로 젊은 청년들은 도회지로 나가고 마을을 지키고 있는 노인네들은 이젠 텃밭 조차도 가꿀 수 없는 상태로 기력이 쇠퇴한 30여 명의 나홀로 가구 에다 귀 어둡고, 귀 안 들리고, 귀 먹은 할매 아지매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재미나는 일이 한 두가지 아닐 뿐만아니라, 저와 장모딸이 없으면 웃을 일이 일이 없다고 가지 말라고 애원을 합니다. ㅋㅋㅎㅎ

가끔씩 시골 5일 장에 가보면 시장보는 사람 보다 병원과 약국을 오가며 세월의 무게만큼 약봉지를 들고 지팡이에 몸을 의지 하거나 손수레를 밀고 다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을 보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렇게 노인 인구가 급속하게 늘어난 원인은 1960~70년대 가난에 허덕이던 우리나라에서는 좁은 땅덩이에서 인구 증가에 대한 염려로 산아제한 정책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짓꼴을 못 면한다” “적게 낳아 잘 기르면 부모 좋고 자식 좋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둘 낳기는 이제 옛말 일등 국민 하나 낳기” “하나 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와 같은 구호로 산아제한 정책을 장려 했습니다.

특히 이것 또한 실효성이 없자, 정관수술을 하면 예비군 동원훈련을 면제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는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 갖고 싶어요” “가가호호 아이 둘셋 하하호호 희망 한국” “혼자 하면 힘든 육아 함께 하면 든든 육아” 어째서 지금 상황은 이렇게나 반전(反轉)된 것일까?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