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피로증후군은 전염병일까?

아침에 일어나면 상쾌해야 할텐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은 수면 부족으로 원인을 돌린다. “잠을 잘 못자서 그럴 거야.” 잠을 많이 잔 다음날 아침에도 역시 피곤하다.

왜 그럴까? 다른 원인이 있다. 특히 ‘만성피로증후군’은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 필자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주변에 피곤한 사람이 많을 때에는 필자도 피곤함을 더욱 잘 느낀다. 그래서 혹시 만성피로증후군은 아마 전염되지 않나 생각해 본 적도 있다.

만성피로증후군이란 뚜렷한 원인 질환 없이 6개월 이상 수면장애, 집중력 저하, 기억력 감퇴, 근골격계 통증 등을 동반하는 심각한 피로감이 주증상으로 지속되는 복합 질환을 말한다. 만성피로증후군은 정의하기가 매우 모호하다. 어떤 특정 질환처럼 검사수치로 진단되는 질병이 아니라, ‘피로’라는 매우 주관적인 증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때, 피로를 일으킬 만한 의학적인 원인은 모두 배제돼야 하고, 피로와 함께 동반된 증상들이 특정 상태를 지녀야 한다.

‘피로’의 정의는 무엇일까? 의학사전을 찾아보면, ‘피로’는 일반적으로 ‘일상적인 활동 이후의 비정상적인 탈진 증상, 기운이 없어서 지속적인 노력이나 집중이 필요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 일상적인 활동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전반적으로 기운이 없는 상태’로 정의한다. 이러한 피로가 1개월 이상 계속되는 경우는 지속성(Prolonged) 피로라고 부르고,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경우를 만성(Chronic) 피로라고 부른다. 만성피로증후군은 잠깐 휴식으로 회복되는 일과성 피로와 달리, 쉬어도 호전되지 않으면서 환자를 매우 쇠약하게 만드는 피로가 지속된다.

이 증후군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와 우리나라의 질병 이름이 조금 다르다. 현재 ‘만성피로증후군(Chronic Fatigue Syndrome)’은 WHO의 ‘국제질병분류 제11차 개정판 (ICD-11)’에 정식으로 그 병명이 등재돼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통계청이 고시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8차)’에서 ‘신경무력증(Neurasthenia, Code: F48.0)’으로 분류되어있다. 즉, 우리나라에선 육체적 피로보다는 정신적 피로감이 더욱 강조되는 신경무력증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신경무력증이란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용어인 신경쇠약증과 다르지 않다. 상당한 문화적 변수가 작용하며 비슷한 점이 있는 두가지 주된 형태가 있다. 그 한 형태는 정신노동 후의 피로감의 상승이며, 이 때문에 일상의 업무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정신적 피로는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생각과 과거 회상의 불유쾌한 기억이며 주의력 집중을 곤란케 한다. 다른 한 형태는 작은 노동 후에도 육체적 피로와 쇠약감을 느끼는 것이며 근육통과 반사장애를 동반한다.

두 형태 모두 어지럼, 긴장 두통, 정신불안정 등의 불유쾌한 신체적 자각이 뒤따른다.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대한 근심, 쾌감결여, 약간의 불안이 있다. 수면과잉이 주로 나타나지만 수면의 초기와 중기엔 수면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만성피로증후군’이라는 질병의 분류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이 질환은 현재 ICD-11의 제8장(Chapter 08) 신경계 질환 중 바이러스 후 피로증후군 (Postviral fatigue syndrome)에 포함돼 있는데, ICD-10에서 ICD-11으로 개정되는 과정에서 8장에서 1장으로 재배치하자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접수된 것이다. 1장은 특정 감염성 또는 기생충성 질환들(Certain infectious or parasitic diseases)이 포함되는 영역이다. 즉 전염병의 영역인 것이다. 일부 의학계에서는 실제로 만성피로증후군을 근육통성 뇌척수염 (Myalgic encephalomyelitis)이라고 부르며 전염병으로 분류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제안에 따라 WHO는 만성피로와 관련된 연구에 대해 광범위하게 문헌을 검토했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만성 피로를 전염병으로 분류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WHO는 또한 △증상의 신뢰할 수 있는 진단 패턴에 대한 합의 부족 △병의 원인에 대한 지속적인 논쟁 △균일하거나 신뢰할 수 있는 치료법의 부재를 확인했다고 했다. 검토된 연구에서 유일한 상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속되는 ‘피로’라는 주요 증상이었다.

비록 아직 만성피로증후군이 전염병의 영역으로 분류되어 있지는 않지만, 세계적으로 전문가들이 전염병영역으로 분류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세균· 바이러스·진균·기생충 등의 병원체가 우리 몸을 침범하는 것을 감염이라고 한다. 병원체나 독소에 의한 조직 상해, 병원체에 대한 숙주 반응에 의해 장애가 발생한 것을 감염병이라고 한다. 우리 몸 안팎에 있는 정상균들이 특정 조건에서 감염병을 일으키기도 하고, 일부는 사람 대 사람에 의해 전파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만약 자기 주변에 만성피로증후군인 사람이 있다면(이것이 특정 조건이다)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정상균들이 그 사람과 같은 증상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도 전염병의 범주에 들기 때문이다.

미증유의 코로나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이런 전염병이 지난간 뒤 많은 사람들이 그 후유증인 이른바 ‘코로나19 장기후유증(Long COVID syndrome)’을 앓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겪었다시피, 이 질환의 증상 가운데 만성피로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증거들과 현실을 인정한다면 아마도 다음 ICD-12 개정판에는 만성피로증후군이 전염성질환으로 분류될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만성피로증후군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는 웃음이라고 본다. 웃음도 전염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하품과 마찬가지로 웃음도 전염성이 강해 다른 사람이 웃는 모습을 보고 따라서 웃게 되는 현상은 자연스런 일이다.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억지로라도 웃는 표정을 지어보고 소리내어 웃어보기를 권유해본다. 유머도 공부하고 코미디 방송도 보고 ‘피곤해 보이지 않는’ 주위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며 유쾌하게 웃어보라. 전염에는 전염으로 대응해 보자.

<박문일원장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