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메에서 띄우는편지/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 가는” 노랫말처럼
내고향 두메산골에서 오늘도 산책삼아 布施하는 마음가짐으로 마을 골목길을 헤매고 다니며 쓰레기를 줍다 보니 가는 길마다 한 채 건너 두 채는 전설의 고향을 찍어도 될 집들이 보인다
무너져 가는 집 안 녹쓴 가마솥을 보니 어린시절 쇠주걱으로 누룽지 긁어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머리는 아직도 그 맛을 기억하는데 그 후 지금까지 그 맛을 느껴본 적이 없다
요즘 나는 넓은 마당과 텃밭의 잡초를 뽑고선 깨끗해진 한가운데 옛날 기본 골격은 목재로 만들고 바닥은 대를 쪼개엮은 평상을 갖다 놓고 그 위에 퍼질러 누워 유치하게 읊어 보고 싶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겨울이면 아침저녁으로 사랑방 아궁이에 군불을 떼고, 큰 가마솥에 소죽을  끓여 소에게 퍼주면 뜨거운 소죽을 입에 물고 고개를 내젓는 것도 보고 싶다
가을에 수확한 고구마를 타나 남은 숯불에 구워 입이 새까메 지도록 日本말로 아까먹고 또먹고 사랑방 아랫목에 자리 잡아 이불 뒤집어 쓰며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 꽃을 피우고 싶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하늘이 잔뜩 흐려 가끔 내 몸이 일기예보를 전할 때 군불 넣은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온 몸을 지지며 내 살이 빠알갛게 익었으면 좋겠다
할 일  없는 겨울 어느 집에 동네 친구 죄다 모여 돈 한푼 없이 그냥 화투도 치고 싶고 자치기, 땍이치기, 연날리기, 구슬치기, 깡통차기 하면서 퇴비 더미 뒤에 숨다가 소똥을 발로 밟아 미끄러지고 싶다
썰매타기 하다가 발이 시려워 모닥불에 슬쩍 스치기만 해도 녹아버리는 나일론 양말을 홀라당 태우고 어머님께 꾸지람을 배가 터지도록 먹고 싶다
풍성한 가을엔 밭이며 산에 영근 감이며 대추며 밤을 따다 들켜 욕 한바가지 얻어 먹고 싶고 오늘은 철이네집, 내일은 자야집 볏집을 날라주며 참도 얻어 먹고 타작후엔 온 몸에 가려워 밤새 벅벅 긁고도 싶다
무더운 여름에 지칠때면 이쪽저쪽 산길에 인적을 확인하곤 실개천 물로 멱을 감고 남의 밭에서 훔친 오이를 한 입 베어 잘근 잘근 씹어 먹고도 싶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하늘이 잔뜩 흐려 가끔 내 몸이 일기예보를 전할 때 군불 넣은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온 몸을 지지며 내 살이 빠알갛게 익었으면 좋겠다
봄이면 진달래 피는 동산에 올라 나물캐는 긴 머리 소녀의 엉덩이에 나부끼는 금박댕기 보고 싶다
동무들과 함께 보리 밭둑 지나가면 종달새 하늘 높이 지저귀는 소리 들으면서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뛰어놀든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오늘따라 밤이면 온종일 논밭에서 일하신 어머니가 호롱불 앞에 앉아 옷이나 양말을 꿰매시는 모습이 보고 싶다
큰 평수의 집이 아니어도 좋다
도로를 달리면 다른 차가 피해가는 외제차가 아니어도 좋다 시골 5일장 亂廛에서 구입한 브랜드 하나 박혀 있지 않은 구루마표 옷이라도 좋다
요즘의 나는 어린시절 촌스러웠던  그 모든 것들이 생각나고 그립다.. 아마 “首丘初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