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메에서 띄우는 편지/오늘의 낙서
요즘 처한 상황에 따라 계급(목사, 장노, 집사)과 신분이 바뀌는 저는 장모딸과 함께 부산과 시골을 오가면서 “님도보고 뽕도따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시골에 와서는 야산 일대를 걸어면서 쓰레기를 줍다보면 밥반찬이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야산에서 채취한 땅두릅에 초장, 제피 이파리 김치, 취나물, 머위 잎사귀에 젖갈 곁들여 쌈밥과 막걸리 한잔을 맛있게 먹고 마시다보니 이것 또한 나름대로의 행복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老婆心
목사: 목적없이 사는 사람
장노: 장~~~노는 사람
집사: 집에서만 사는 사람
그러면 도대체 행복은 뭔가?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더니 “행복”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로 되어있습니다. 누구나 인생을 잘 살려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많이 소유한다고 우리는 ‘행복’해질까요?
많이 가져도 나름대로의 걱정과 스트레스의 요소는 존재한다고 봅니다. 물론 그 형태와 강도, 정의하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저는 행복은 무엇을 많이 가지고 이루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내 마음가짐 즉, 삶의 실체는 물체가 아니라 내가 느끼는 감정과 ‘감사할 줄 아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의 법학자 라이피 콥스는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벌주는 법을 따로 만들지 않은 까닭은 감사할 줄 모르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가장 큰 형벌이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미국 듀크대학병원 의사들은, 매일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평균 7년을 더 오래 산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해독제이자 방부제라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종교인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써 2009년 02월 16일 선종 하신 김수환(1922.05.08) 추기경께서 말씀하신 “삶은 계란이다”라는 일화가 생각납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강론 중간에 유머를 한마디 하셨습니다. “여러분, 삶이 무엇인가요?”하시자 갑자기 조용해 졌다. 너무 철학적이고 심오한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쉬워요!…삶은 계란입니다” “거 있잖아요, 언젠가 열차를 타고 가면서 삶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꼴똘히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중 통로를 지나던 홍익회 직원이 판매대를 끌고 가면서 “오징어, 땅콩, 삶은 계란 이요”하고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김수환 추기경은 그래 “삶은 계란 이요” 하는 외침에 깨달음이 왔답니다. ㅎㅎㅎ 모두 깔깔 웃었다 합니다. 김 추기경 말씀이니까 웃자는 얘기 속에 뼈가 있어 보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유머감각이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오늘 같은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수행 신부에게 진지하게 묻습니다. “비가 몇 도인지 아는가? 답을 할 수 없지요. 기온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추기경은 비는 5도”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비가 오도다/비가 오도다/마지막 작별을 울음과 같이/…가만히 불러보는/사랑의 탱고”(비의 탱고, 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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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詩 반칠환
요 앞 시궁창에서 오전에
부화한 하루살이는,
점심 때 사춘기를 지나고,
오후에 짝을 만나,
저녁에 결혼했으며,
자정에 새끼를 쳤고,
새벽이 오자 천천히
해진 날개를 접으며 외쳤다.
춤추며 왔다가
춤추며 가노라.
미루나무 밑에서
날개를 얻어 칠일을 산
늙은 매미가 말했다.
得音도 있었고
知音이 있었다.
꼬박 이레 동안
노래를 불렀으나
한 번도 나뭇잎들은
박수를 아낀 적은 없었다.
칠십을 산 노인이
중얼거렸다.
춤출 일 있으면
내일로 미뤄두고,
노래할 일 있으면
모레로 미뤄두고,
모든 좋은 일은
좋은 날 오면 하마고
미뤘더니 가뿐 숨만
남았구나.
그 즈음 어느 바닷가에선
천 년을 산 거북이가
느릿느릿 천 년째
걸어가고 있었다.
모두 한평생이다.